5영상을 재생시키고 약 10초. 〈서울대저널〉의 ‘들어야만 선택할 수 있는 세계’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볼륨을 체크하게 된다. ‘왜 소리가 안 나오지? 스피커가 꺼져 있나?’ 고개를 갸웃할 때쯤 자막이 뜬다. “지금 화면은 음소거된 것이 맞습니다.” 영상 속 배경은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 양당 후보가 가득 잡힌 화면에서 우측 아래에 수어 통역사의 모습이 겨우 눈에 들어온다. 이 음소거된 화면은 농인들의 시선에서 본 대선 TV 토론회이기도 하다.
김윤영(노어노문학과 19학번), 김준수(아동가족학전공 18학번), 유영은(영어영문학과 18학번). 〈서울대저널〉의 PD 세 명 모두 지난해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가 처음 표를 행사한 대선이었다. 그 무렵 본 영상 하나가 기억에 남았다. 한국 수어의 날인 2월4일, KBS 9시 뉴스 클로징이었는데 항상 화면 구석에 위치하던 수어 통역사가 아나운서와 똑같은 크기로 잡힌 일대일 화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선 토론회에서도 수어 통역은 작게 잡힐 뿐이다. ‘이렇게 작은 화면으로 농인 유권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작은 비율을 유지할까?’
당초 구상은 수어 통역사를 인터뷰해 제작하는 5~10분 분량의 미니 다큐였다. 그러나 취재를 하고 기획회의를 거듭하며 의문이 불어났다. 농인 당사자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몇 단계 소개를 거쳐 농인 작가 이샛별씨를 섭외했다. 영상에 출연한 이샛별씨는 수화로 자신의 경험을 전한다. “제가 얼마 전에 1~3차까지는 토론을 봤습니다. 후보 4명이 일대일로 토론할 때 수어 통역사 한 명이 두 사람의 발언을 통역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통역하다 보니 누가 말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공약도 다 다른데.”
유영은 PD는 이 장면을 편집하며 수어 백과사전을 보고 또 봤다. 수어를 문자로 옮기는 과정은 서로 다른 언어를 통역하는 작업과도 비슷하다. “수어랑 자막을 맞춰야 하는데 제가 수어를 모르잖아요. 수어 백과사전을 보면서 한 땀 한 땀 편집을 했어요. 수어도 하나의 언어라는 걸 영상에서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니 제작 기간 2개월이 소요된 17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었다. 김윤영 PD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영상도 청인 중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자막을 다 넣었지만 농인분들의 모국어는 수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수어 통역 화면을 다 넣었어야 하는데 예산 문제로 실현하기가 어려웠어요.” 학생 자치언론인 〈서울대저널〉은 후원금 등으로 운영된다. 새 학기, 수습기자를 모집하는 홍보물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믿어지십니까? 진보를 일구는 참목소리 서울대저널, ‘충격’ 학생 자치언론 실존!!”
예심을 통과한 세 편은 사실 어느 작품이 수상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비슷한 수준의 작품성을 보여주었다. 수상에 실패한 중앙대방송국 UBS의 ‘한·중 시그널’은 다른 작품에 비해 완성도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고, 물과 기름 같은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 학생들 간의 관계를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려 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만약 공모전의 주최자가 동영상 매체였다면 충분히 수상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다만 약간 길고 지루했다는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있었던 점은 참고할 만하다.
농인(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어가 단지 한글을 손동작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생성된 하나의 독립된 언어라는 점은 비장애인에게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서울대저널〉의 방송·영상 부문 수상작 ‘들어야만 선택할 수 있는 세계’는 대통령 선거라는,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행사를 잘 이용하여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고, 농인들이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방송사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그래픽을 활용하여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도입부에서 방송 사고처럼 보이는 묵음 처리도 잠시나마 시청자를 농인의 입장에 서게 하는 등 창의성이 돋보였다. 수작이다.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차지한 〈대학신문〉의 ‘한·일 휠체어 비교’는 완성도도 있고 창의성도 돋보인 작품이다. 다만, 이번 공모전 예심을 통과한 작품 중에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기사가 많았다. 좀 지나칠 정도다. 같은 주제가 많다 보니 마치 강남 ‘일타 강사’ 한 사람에게서 수업받은 학생들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예심에서 너무 완성도만 따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획일적으로 완성도만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잠재력은 평가받을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 다음엔 조금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한 기사나 그들만의 이슈에 천착한 기사들이 좀 더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