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뉴커런츠상

묵시적 면죄부, 윤창호법

〈광운대신문〉(데이터저널리즘팀·KDT): 김동찬, 구동현, 이은서

2018년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윤창호법’이 도입되었다. 그로부터 3년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까? 〈광운대신문〉은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을 통해 ‘윤창호법’의 실효성을 따졌다. 경찰청,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시스템을 뒤져 음주운전 사고 관련 데이터 9만1622개를 확보했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대법원 판결문 424건을 입수해 윤창호법 시행 전후로 가해자에 대한 판결 내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 분석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는 김동찬(15학번), 구동현(17학번), 이은서(20학번) 기자가 학보사 내에 광운대 데이터저널리즘팀을 꾸려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2021년 6월 본격적인 취재에 착수한 뒤 이들은 곧 깨달았다. 데이터저널리즘이란 지난한 수작업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확보한 판결문 424건을 모두 읽고 일일이 정보를 분류했다. 세 명이 나눠서 해도 밤을 지새워야 하는 일이었다. 김동찬 기자가 보여준 엑셀 시트에는 사건 발생일, 판결 선고일, 징역 기간, 혈중 알코올 농도, 음주운전 전력 등의 기준에 따라 424개 판결의 세부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모래알처럼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진주알을 발견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하루 차이로 벌어진 두 건의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 0.116%, 인명 피해 1명으로 동일.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징역 6년과 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 3년)로 판이하게 달랐다.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음주운전 사건이라도 윤창호법이 아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운대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이 두 사례를 비교해 음주운전 형사처벌 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혀냈다.

완성도 높은 인터랙티브 페이지와 깊이 있는 보도는 심사 과정 내내 놀라움을 샀다. 더 놀라운 점은 세 기자 모두 온라인 페이지를 제작하고 데이터저널리즘 기법으로 기사를 쓰는 게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비결을 묻자 뉴커런츠상 공동 수상작인 〈포브〉가 언급돼 또 한 번 놀랐다. 2020년 〈포브〉의 ‘유령집회’ 기획을 접한 뒤 〈포브〉에 연락을 했고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예상을 뛰어넘는 팀이었다.

뉴커런츠상 심사평

편견 깬 데이터 저널리즘 죽음의 차별 고발한 심층 취재

홍성철 (경기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심사위원들은 뉴커런츠상 수상작으로 〈광운대신문〉의 ‘음주 살인마의 묵시적 면죄부, 윤창호법’과 〈포브〉의 ‘애도의 지역격차:공영장례’를 선정했다. 뉴커런츠상 수상작으로 두 편을 선정한 것은 두 작품 모두 뛰어났기 때문이다.

〈광운대신문〉의 기사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발생한 음주운전 사망사고 대법원 판결문 424건을 조사, 윤창호법 시행 전후의 형량을 비교했다. 그 결과 실형 형량은 14개월, 집행유예 기간은 12개월 소폭 증가했음을 밝혀냈다. 윤창호법의 사회적 반향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처벌 수위가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된 셈. 이는 법원의 양형기준이 이전 선고된 형량의 평균을 바탕으로 하면서 윤창호법 이전의 낮은 형량들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알던 편견을 데이터 저널리즘이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사진동아리에 바탕을 둔 〈포브(POB:Public Observers)〉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기록해왔다. 이번 공영장례 기사는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 처리’에 대한 사회고발성 기사다. 차분하게 공영장례 제도의 허점을 파헤쳤다. 취재 결과,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 중 공영장례 제도의 조례가 마련된 곳은 133개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들 133곳 자치단체 중에서 상당수가 예산 부족으로 시행을 보류하거나 시행을 거부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해당 지자체에 직접 전화를 걸거나,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활용하여 조사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숨이 막혔다. 장례 의식도 거치지 않는 죽음들이 많다는 것을, 사후에도 고인들이 살았던 지역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다는 현실 고발에 기성세대로서 많이 부끄러워졌다.